아이들에게서 배운 교훈 하나
아이들에게서 배운 교훈 하나
  • 관리자
  • 승인 2006.06.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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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사회재활팀 조숙현


사회복지사라는 자랑스러운 호칭을 달고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재활팀에 몸을 담은지 벌써 한 달 모자란 2년이 되었다.

지난 1년 11개월 동안 자람교실 이라는 아이들의 미술활동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해 오면서 그 속에서 아이들의 말과 행동과 표정에서 배울 수 있었던 점은 말로 다 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짧게 적어보자 한다.

내가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천사들의 무리였다. 장애를 지닌 아이들과 처음 대면한 이래 수개월간은 문제행동이 심한 몇몇 아동으로 인하여 미술 프로그램이 아닌 난장판인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만큼 천사무리에 익숙해지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말수가 적고 미술놀이 보다는 밖으로 뛰는 것을 더 좋아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종이를 붙일 때 쓰는 물풀을 고의적으로 책상 위에 터트려 고사리 같은 손바닥을 이용해 책상 여기저기 터진 풀을 문지른다.

이 터진 풀을 우리가 앉는 의자위에 잔뜩 발라놓고 유리 창문과 창문 틈에도 발라놓고 벽에도 발라놓고 평소 아이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예쁜 모양의 시계 교구에도 틈틈이 구석구석 잘도 발라놓는다.

발라 놓고는 너무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 잘도 웃어댄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후 혼자 남은 나는 구석구석 이미 다 굳어버린 잘 지워지지 않는 끈적한 풀을 없애기 위해 닦고 또 닦는다. 그러면서 나는 참으로 고단하단 생각을 한다.

한달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의 이런 지나친 풀칠하기 놀이로 고단하고 또 지칠 때 즈음해서 기가 막힌 좋은 방법이 머리를 번개처럼 치고 지나간다.

드디어 아이와 또 전쟁을 치루는 날! “자~! 좋았어. 선생님하고 한번 풀칠 놀이해 보자~!” 하고 나는 물풀을 닥치는 대로 사정없이 터트려 버렸다. 그리곤 내 몸에 바르고 아이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끈적끈적 썩 좋지만은 않은 물풀의 촉감이 아이의 살갗에 닿는다. 아이 얼굴에도 바르고 팔, 다리 보이는 살에는 닥치는 대로 발라주었다. 아이는 어리둥절하면서 “으악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로 도망을 갔다. 아이는 물로 씻고 또 씻었다.

그 후로 그 아이의 지나친 장난은 멈출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된다, 하지마라, 잘못된 행동이다”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아이 스스로 경험을 통해 깨달아가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 풀 장난 사건은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큰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무심코 지나칠지 모를 일이었으나 나에게 있어 참 많은 배움을 안겨준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그건 이기적인 행동이다.”라고 말하면서도 내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나 하나면 편하고자 나 하나만 즐겁고자 얼마나 많은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까?

딸로서 누나로서 친구로서 교사로서 회사동료로서 지역사회주민으로서 나는 진정 우리 곁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걸까?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일터에서 내가 가져야할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한번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