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활동가가 전하는 꿈터 이야기]청소년,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현장활동가가 전하는 꿈터 이야기]청소년, 그들이 원하는 것은
  • 관리자
  • 승인 2007.01.30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연합(UN) 헌장에서는 "인종·성·언어·종교에 상관없이 인간의 권리와 기본적인 권리를 존중하고 준수할 것"을 서약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는 권리인 인권이다.

인권에 관련하여 최근 많은 이야기거리들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인권을 유린당한 채 평생을 살아온 노예청년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경악과 비난을 퍼부었고, 장애인, 성적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인권보호를 옹호하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기관이 있어 다양한 대상층에 대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거기에 성범죄자의 인권, 수감자의 인권 등 천하에 몹쓸 짓(?)을 한 이들에게도 인간이기에 가지는 인권이 있다고 한다. 도대체 인권이란 뭔가 적절한 정의를 내려보기도 전에 인권은 우리 가까이에 함께 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시민단체 실무자로 일을 해오면서 늘 기준이 되어온 가치가 있다면 바로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호받고 있는가이다. 복지의 출발점이 되는 인권, 특히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인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고 싶다.

외국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가장 당연하게 무시되어 온 것이 있다면 바로 연령차별이 아닐까 싶다. 청소년들을 일컫는 말조차 ‘미성년자’, 즉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자로 부를 정도로 ‘미완의’, ‘미성숙한’, ‘부족한’ 존재들이 바로 청소년들이다. 그래서 이들에겐 권리보다는 보호가 더 필요하고 절실하다. 많은 성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해 학생의 날 행사를 하면서 청소년들이 지키고 싶은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두발규제 철폐, 0교시 및 야간자율학습(이하 야자) 폐지, 무차별 체벌 금지 등 언뜻 듣기엔 어린 학생들이 어디서 이런 무시무시한 말들을 지어냈나 그 내막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는데, 조목조목 한 가지씩 성인들에게 대입해 보면 매우 당연히 지켜져야 할 권리들이었다.

한때 정권에 의해 헤어스타일과 패션까지 규제당한 경험이 있는 어른들은 어쩌면 이들의 목소리를 좀더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공부하는 데 방해되니까, 학생으로 구분하기 쉽게 머리길이를 규제하고, 정규 수업시간에 앞서 한 시간 더 수업을 해야 하는 ‘0교시’, 자율이란 말이 무색한 ‘야자’, 선생님이니까, 부모니까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의식의 전면에는 이 모든 것이 다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공인된 대의명분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것들이 모두 그들을 위한 것일까?

나의 학교생활을 돌아보면 요상한 머리모양을 한다거나 교사의 체벌에 항의를 한다거나 야자를 거부하는 등의 행동은 생각조차 해볼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땐 나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다는 걸 전혀 몰랐고, 그걸 거부할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렇다면 인권은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청소년들에게 인권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아동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대부분 가해자가 어른이기 때문에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일어난다. 자기를 예뻐해 주는 어른한테 어떻게 감히 싫다고,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서는 폭력이나 비행, 범죄 등과 같이 자신의 문제를 외부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우울증, 자살, 은둔형 외톨이(집에만 갇혀 지내는 아이들) 등 자신의 문제를 속으로만 삭이는 아이들, 착하고 흠잡을 데 없는 아이들이 보이는 잔혹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다소 거칠지만 자신의 말을 내뱉을 줄 아는 아이, 반항이라도 하는 아이는 그나마 건강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건강하게 살아나갈 힘을 기르는 일로서 우리는 그들에게 인권을 얘기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때로는 매도 들었고, 때로는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시키면서 마음속에는 항상 죄책감과 함께 아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며 살아가는 평범한 엄마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아이가 자신이 싫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싫다고 말하고,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그런 거부가 수용되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유예되는 청소년들에게 인간이기조차 유예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글_김지혜 (청소년을 위한 군포내일여성센터, 학교폭력예방팀장)

(2007.1.20.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