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활동가가 전하는 꿈터 이야기] 폭력에 관대한 우리 사회가 낳은 학교폭력...
[현장활동가가 전하는 꿈터 이야기] 폭력에 관대한 우리 사회가 낳은 학교폭력...
  • 관리자
  • 승인 2007.03.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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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관대한 우리 사회가 낳은 학교폭력이라는 괴물


사람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가끔은 내 기억력이 너무 한심스러워 조기 치매가 아닌가 걱정스러울 때도 있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학교폭력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기억력의 한계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나라에서 학교폭력이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폭력과 체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대한 태도가 인식의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자녀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상급자가 부하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 우리는 의외로 관대하고 무관심하다. 그럴 만하니까, 맞을 짓을 했으니, 때려서라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의식에 우리는 날 때부터 젖어있었다. 살인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가정폭력의 상황을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들조차 남의 집안일에 괜시리 끼어드는 게 아닌가 꺼림직해 하고, 부모나 교사의 체벌은 자녀와 학생을 위한 사랑의 매, 훈육의 한 수단으로 여기고, 군대나 동아리 등에서 선배의 구타는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는 기회(?)로 여기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자라난 우리는 아무래도 폭력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위해 학교에 나가면 때리거나 욕하기, 따돌림 등의 행동들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이 장난으로 행해지지만 운이 나쁘면 많이 다쳐 일이 커질 때도 있다. 그럴 때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생기고, 그 부모들도 각각 피해자, 가해자가 된다. 아이러니한 건 동일한 사건을 두고 피해자 측은 학교폭력이라 주장하고, 가해자 측은 애들끼리 장난치다 실수로 좀 다쳤다고 하는 것이다. 실수든 장난이든 폭력이 일어난 건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을 다 학교폭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학교폭력에는 세 가지 특성이 숨어 있다.
첫째, ‘고의성’이다. 실수가 아닌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학교폭력이 된다. 성인 범죄에 있어서도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결과에 많은 변수를 가져온다. 예방교육을 나가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었는데, 학교폭력으로 신고당한 경우 법에 의한 처벌은 몇 살부터 받게 되는지 물어왔다. 소년법상 만 14세 미만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자 ‘아싸~’하고 좋아라 하는 것이다. 너무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간혹 드러나는 아이들의 폭력성을 접할 때마다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두 번째는 ‘반복성’이다. 어쩌다가 실수로 한 번 일어난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계속될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례들이 3개월 이상 학년이 바뀌고 상급학교에 가서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어이없는 얘기이지만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왕따를 당하던 아이의 신상이 인터넷으로 전해져 미국 유학을 가서도 왕따를 당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하물며 같은 동네에서 자라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 비슷한 권역으로 옮겨다니는 우리네 교육 여건 안에서 학교폭력은 시간이 갈수록 그 위력을 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 번째는 힘의 불균형이다. 물리적인 힘의 차이의 의한 것도 물론이지만 집안환경의 차이, 성적의 차이, 외모의 차이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경우 더욱 교묘하고 잔인하다. 좋은 성적에 집안환경과 외모까지 뛰어난 학생이 가해자인 경우 교사들도 굳이 들춰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해가 더 상습적이고 치밀해질 수 있다.

이 경우 특이하게도 가해자의 자존감은 더욱 높아지는 반면 피해자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된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더 지지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 북어랑 마누라는 삼일에 한 번씩 때려야 된다는 말이 있다. 북어는 그렇다 쳐도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자기 부인을 그렇게 때려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또 텔레비전이 말을 안 들어도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하면서 무심코 한 대씩 치는 우리들 모습 속에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때려도 된다는 의식이 오늘날 학교폭력의 문제를 이렇게 심각하게 만들지 않았나 내멋대로 생각해 본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면 상대방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기본’이 너무나도 절실한 우리의 학교, 하지만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변화의 에너지가 많기 때문이다.


김지혜_청소년을 위한 군포내일여성센터, 학교폭력예방팀장


2007/3/10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