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그들의 이유 있는 반항_현장활동가가 전하는 꿈터 이야기
청소년 그들의 이유 있는 반항_현장활동가가 전하는 꿈터 이야기
  • 김지혜
  • 승인 2007.06.23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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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가가 전하는 꿈터 이야기


청소년 그들의 이유 있는 반항

지난 5월 29일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 학생인권토론회를 기획, 진행하였다. 담당자는 아니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행사 진행, 사후 평가회까지 함께 하면서 청소년, 특히 학생의 인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우선 지역사회에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 청소년 지도자 등이 모여 학생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만으로도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 교육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토론이 아닌 학생의 인권을 논하는 자리인 만큼 우리 사회가 이제는 정말 성숙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조심스런 추측도 해보았다.

주제는 두발자유, 야간자율학습, 체벌, 사생활권 침해 등 크게 네 가지였다. 각 주제에 관해 찬반의견이 다양하게 나왔는데, 참석한 토론자들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 청소년 지도자를 대표한다고 할 순 없지만 지역사회에서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많은 분들인 만큼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기며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을 지켜보면서 각각의 주제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짧게나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두발자유의 경우 학생 대 학부모, 교사의 생각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부분이었다. 두발을 획일화함으로 학생들을 좀더 쉽게 지도, 감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닌가, 또 짧은 머리가 단정하고 머리가 단정해야 공부에 방해되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견도 있었다. 누군가는 군사문화의 잔재라고도 했다.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신의 외모에 대한 생각은 자존감 형성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 머리가 길든 짧든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관심사의 하나이고 자기표현의 수단인 것이다. 두발을 규제하기에 앞서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조차 없었던 시절을 우리는 지내왔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문화에 대해 이제 그들은 ‘왜?’라고 묻고 있다.

야간자율학습, 일명 ‘야자’에 대해서는 모두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말 그대로 자율학습인데 실제는 자율이 아니어서 문제다. 실제로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신청자만 ‘야자’를 하게 해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야자를 신청한다고 한다. 대학이 아니면 다른 선택이 없는 학교 현장에서 순수한 의미의 ‘야자’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몇몇 학부모들은 어차피 ‘야자’ 끝나고 학원 갔다 오면 새벽 한두 시가 넘으니 야자를 하지 않고 학원 공부 후 좀 쉴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한다.

괴로운 건 학생만이 아니다. 학생들이 야자를 하는 동안 교사들은 꼼짝없이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자신과 가정을 위한 시간이란 없다. 들여다볼수록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답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대부분의 학생의 목표가 대학진학에 맞춰져 있는 한 이 문제의 해법은 요원하기만 하다.

체벌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었는데, 체벌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과 폭력이 아닌 체벌은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었다. 토론자로 참석한 학생도 합리적인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교사도 감정에 치우친 체벌은 극히 일부분일 뿐 학교폭력, 왕따 등의 복잡한 문제로 교사들도 어려움이 많다고 하였다.

실제 학교에 교육을 가보면 체벌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필요악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통제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체벌로 학교폭력 등을 다스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다. 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때린다? 또한 모두가 알고 있듯이 체벌의 효과는 매우 일시적이다. 그 적은 효과에 비해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닌 것이 바로 체벌이고, 맞아야 정신차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폭력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있다. 손쉬운 체벌 대신 다른 수단을 생각해내는 것이 더 많이 요구된다.

마지막 사생활권 침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무방비로 당하는(?) 입장인 학생들의 의견이 매우 많았다. 엄마가 일기를 몰래 훔쳐본다거나 선생님이 불시에 가방 검사, 사물함 검사, 핸드폰 문자 검사를 하는 등 학생들에 대한 사생활권 침해는 그들을 보호, 양육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시되고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침해가 이메일이나 홈페이지 해킹, UCC 유포 등의 엄청난 침해로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내가 필요하다면 다른 이의 사생활을 침해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바로 출발점인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운다. 집에서는 부모를 배우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배운다. 그들이 원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배우는 것이다. 부모가, 교사가, 어른이 믿음을 주지 않으면 그들도 믿음을 주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글을 쓰면서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그래도 많은 어른들이 배움의 본보기가 되기에 노력하고 있음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토론회를 마치고 난 소감은 한 마디로, ‘참 할 일이 많구나’ 였다.
글_김지혜(청소년을 위한 군포내일여성센터 학교폭력예방팀장)

2007/6/23 경기복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