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빈민급식소, 갈 곳 잃은 취약계층··· 서울시 "지원할 법적 근거 없어"
문 닫은 빈민급식소, 갈 곳 잃은 취약계층··· 서울시 "지원할 법적 근거 없어"
  • 서한결 기자
  • 승인 2020.03.11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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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전국천사무료급식소 등 빈민 무료급식소 운영 중단 이어져
서울시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급식소 25곳 중 13곳 중단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밥퍼'는 2월 23일부터 3월 23일까지 4주 간 운영을 중단한다. 입구에는 중단 연장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밥퍼'는 2월 23일부터 3월 23일까지 4주 간 운영을 중단한다. 입구에는 중단 연장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감염 우려가 커지면서 노숙인,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민간단체의 급식소 운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관할 지자체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책임을 피하고 있다.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는 9일부터 23일까지 급식 중단을 2주 연장한다고 밝혔다. ‘밥퍼’를 운영하는 다일공동체는 공고문을 통해 “서울시의 권고에 따라 급식중단 기간을 2주 더 연장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린다”고 전했다.

‘밥퍼’는 하루 평균 700여 명의 독거노인과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해왔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1월 말 500명까지 급식 인원이 줄었고, 확산이 소강상태에 이른 2월 초 다시 1000명 수준으로 늘었다. 

그러나 정부가 코로나19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지난달 23일, 지역 사회 감염 차단을 위해 3월 7일까지 급식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다시 2주를 연장한다고 밝힌 것이다.

9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밥퍼’는 중단 연장 소식을 듣지 못하고 온 방문자 약 300여 명을 위해 3찬 도시락과 마스크, 손소독제, 소독티슈 등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날을 제외하면 해당 기관이 운영을 중단한 4주 동안 기존에 식사를 제공받던 빈민들을 위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10일 '밥퍼'의 운영 중단 연장 소식을 듣지 못하고 방문한 B씨가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10일 '밥퍼'의 운영 중단 연장 소식을 듣지 못하고 방문한 B씨가 우산을 쓴 채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운영 중단 연장 이틀째인 10일 오전 10시경, 이를 모르고 ‘밥퍼’를 방문한 A씨는 “멀지만 (운영을 유지하는) 천주교(빈민급식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며, “점심에는 ‘프란치스코의 집’, 저녁에는 ‘안나의 집’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재단 빈민급식소는 기존 배식에서 도시락으로 방법을 변경해 운영을 유지하고 있다. ‘밥퍼’와 같은 동대문구에 위치한 ‘프란치스코의 집’은 오전 11시 45분부터 점심 식사를, 성남시 중원구 소재 ‘안나의 집’은 오후 4시 30분부터 저녁을 제공한다.

10시 30분쯤 방문한 B씨 역시 운영 중단 연장을 몰랐다며 “갈 곳이 없다.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밥퍼나눔운동본부 김미경 실장은 “다일천사병원 앞 대형 쌀독에 쌀을 담아놓고 자유롭게 퍼가게 한 것 말고는 (식사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따로 준비한 건 없다”며, “감염 우려 때문에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1992년 대구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국천사무료급식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해당 기관 역시 지난달 5일부터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전국 모든 지점의 급식을 중단했다.

전국천사무료급식소 이현미 기획팀장은 “정부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봉사자들도 참여를 꺼려하는 등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에 부담이 따른다. 단체 규모가 작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세울 수 있는 대책이 없다”고 밝혔다.

“예산적 지원 근거가 없다”

10일 서울시 지원 기관인 서울역 '따스한 채움터'는 여전히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주변 급식소 중단으로 더 많이 몰려드는 노숙인이나 독거노인들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 (사진=서한결 기자)
10일 서울시 지원 기관인 서울역 '따스한 채움터'는 여전히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주변 급식소 중단으로 몰려드는 노숙인이나 독거노인들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 (사진=서한결 기자)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중단된 ‘서울지역 노숙인 무료급식소’를 조사한 결과, 민간이 운영하는 급식소 전체 25곳 중 13곳의 급식이 중단됐다. 서울시가 관리, 지원하는 8곳은 운영 유지 중이다. 홈리스행동은 조사결과에 대해 공적 급식 지원 체계의 확대와 개선의 필요성이 드러난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 내 집단 감염 발생한 10일에도 서울시 지원 기관인 서울역 '따스한 채움터'는 빈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민간급식소 중단으로 이전보다 더 많이 몰려드는 노숙인이나 독거노인들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

따스한 채움터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었다”면서 “(인원 초과로) 식사를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말했다.

관할 지자체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난색을 표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이진산 주무관은 “서울시에서 민간급식소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는 빈민들을 지원하는 것은 법적, 예산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시에서도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사회복지법에 근거가 없어 뽀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지역 경제 악화 해결을 위해 ‘재난기본소득’까지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무료급식소 운영 중단으로 갈 곳을 잃은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도 함께 필요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