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하루 전에 출근 말라고 통보, 월급 50만원도 안돼", 65세 아이돌봄노동자
“매번 하루 전에 출근 말라고 통보, 월급 50만원도 안돼", 65세 아이돌봄노동자
  • 서한결 기자
  • 승인 2020.03.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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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자녀 하원 및 돌봄 서비스 제공
"일 안하고 집에 있으면 우울증 걸려요"
정춘숙 씨가 어린이집 앞에서 하윤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정 씨가 어린이집 앞에서 하윤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55년생 정춘숙(가명) 씨는 매일 오후 4시 집을 나선다. 5월이면 두 돌이 되는 하윤(가명)이가 어린이집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 씨는 작년 4월부터 맞벌이 부부 자녀의 하원을 돕는 서울형 일자리 ‘아이돌봄기동대’로 일하고 있다. 어린이집 시간에 맞춰, 자택이 있는 구로디지털단지 부근에서 신림역 근처 어린이집까지 운동 삼아 걸어서 하윤이를 데리러 간다.

정춘숙 씨의 업무는 하윤이를 하원시키고 부모가 귀가하는 7시 반까지 돌봐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현관에 들어서면 하윤이는 유모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고 울기 시작한다. 정 씨는 하윤이를 유모차에 그대로 두고 집을 정리한다.

울다 지친 하윤이를 인형으로 겨우 달래 화장실로 데려간다. 정 씨는 하윤이의 기저귀를 확인하고 손발을 씻기면서 “내 손주 보듯이 혼내고 다그치면 큰일나요. 사무실에서 아기들이 아무리 떼써도 항상 고객 대하듯 조심하라고 교육받아요”라고 말했다.

다 씻고 나온 하윤이는 그림책을 보고, 책에 흥미를 잃으면 정 씨와 숨바꼭질을 한다. 이번엔 정 씨가 지쳐 저녁 식사로 하윤이의 관심을 유도한다. 정 씨가 이유식을 데워 먹이고 있을 때쯤 하윤이 엄마가 귀가해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시작한다. 그동안 하윤이를 보는 것은 정 씨의 몫이다. 집안일은 업무 외 일이기 때문에 해주지 않는다고 정 씨는 설명했다.

하윤이의 부모 중 한 명이 귀가하고 퇴근 시간인 7시 30분이 되면 비로소 정 씨의 하루 업무가 끝난다. 정 씨는 부모가 조금 늦게 오는 날은 하윤이를 조금 더 돌봐주고, 일찍 오는 날은 부모의 권유 하에 퇴근도 빨라진다고 전했다.

정춘숙 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윤이의 배꼽 인사와 손 뽀뽀가 이어진다. 정 씨는 현관을 나서면서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을 때나 퇴근할 때, 애가 저렇게 좋아서 반겨주면 거기서 힐링이 돼요. 내 나이에 어디 가서 누가 환영해주겠어요”라고 말했다.

하루 3시간·시급 9300원·한달 15일 미만 근무··· 월급 50만원 안돼

정 씨가 하윤이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정 씨가 하윤이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서한결 기자)

정춘숙 씨는 백화점에서 9년, 마트에서 7년 일하다가 인원축소 과정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가 65살이 되던 해다. 이후 1년 정도 쉬다가 지인의 소개로 ‘아이돌봄기동대’를 알게 됐다.

서울형 일자리 ‘아이돌봄기동대’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가 노인들의 사회 지원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60세 이상에게만 아이 돌봄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정 씨 월급 중 9만 5천원은 서울시에서, 나머지는 부모가 지급한다.

정 씨는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있는 게 마트 일용직이나 요양보호사밖에 없어요. 아이돌봄도 (민간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들 쓰려고 하지. 처음 기동대 사무실 갔을 때 나이 낮춰 말하려고 했는데 (기준이) 60살 이상이라서 놀랐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 돌봄 노동자와 맞벌이 부부가 대면을 해보고 일을 할지 결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이가 많으면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갑작스럽게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정 씨는 하윤이 부모가 월차를 쓰게 돼서 안 나와도 된다는 통보를 매번 하루 전에 한다고 한탄했다. 부모에게 미리 말해달라고 얘기해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하루 전 통보로 시간도 활용하지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로 인해 정 씨가 일하는 날은 한 달에 15일 미만인 경우가 많다. 하루 3시간, 시급 9300원을 감안하면 정 씨의 월급은 50만원이 안되는 셈이다.

정 씨는 다른 고충들도 털어놨다. 그는 고객이기 때문에 돌보는 아이가 아무리 떼를 써도 단호하게 하지 못하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CCTV로 부모가 항상 확인하기 때문에 감시받는 기분으로 일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전한다. 정 씨는 "오래 일하던 사람들은 일 안하고 집에 있으면 우울증 걸려요. 이 나이에 이런 자리라도 있는 게 감사하죠. 건강해지는 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